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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생 직업군 중 하나인 ‘로컬 콘텐츠 디렉터’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직업은 단순한 기획자나 마케팅 전문가와는 조금 다릅니다. 특정 지역, 특히 소멸 위기의 시골 마을이나 쇠락한 도시 지역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고, 지역의 고유 자원과 이야기를 엮어 사람들의 관심과 방문을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기존에는 지방 자치단체의 홍보 담당자나 공공 프로젝트 위탁 기관이 해왔던 일들이지만, 지금은 민간 중심의 창의적 기획자들이 마을 브랜딩 시장에 진입하면서 '로컬 콘텐츠 디렉터'라는 명칭으로 직업적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글로벌해질 수 있다는 역설 속에서,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있고,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을까요?

 

한 마을을 이야기로 만든다, 로컬 콘텐츠 디렉터
한 마을을 이야기로 만든다, 로컬 콘텐츠 디렉터

 

‘로컬’을 다시 디자인하다: 마을을 브랜드로 바꾸는 일의 시작


로컬 콘텐츠 디렉터는 단순히 마을을 홍보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마을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외부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구조화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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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강원도 한 시골 마을이 있다면, 그 마을에 오래된 양조장이 존재하고, 그곳의 장인이 3대째 술을 빚고 있다면 이 자체가 콘텐츠가 됩니다. 하지만 콘텐츠로 끝나지 않고, 그 술을 매개로 마을의 역사, 문화, 사람, 공간, 풍경 등을 하나의 스토리로 묶고, 이를 외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체험, 공간 기획, SNS 홍보, 굿즈 제작, 전시 기획 등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바로 이 직업의 핵심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냥 한적한 시골 마을’은 어느 순간 고유의 브랜드를 지닌 마을로 전환됩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우레시노’ 같은 온천 마을이 콘텐츠 디렉터에 의해 도시 브랜드로 거듭나 관광객 수가 급증했으며, 한국에서도 담양, 고성, 영월 등 일부 지역이 청년 디렉터들에 의해 다시 살아나는 사례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로컬 콘텐츠 디렉터는 이렇듯 지역 고유의 자원을 기획력과 창의성으로 재해석하여 사람을 끌어오는 직업이며, 지역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무슨 일을 할까? 로컬 콘텐츠 디렉터의 실무 영역


이 직업의 실무는 단순한 콘텐츠 제작에 그치지 않습니다.

 

첫째, 지역 자원 발굴과 아카이빙 작업이 필요합니다. 지역의 오래된 기록, 사진, 구술 인터뷰 등을 모아 스토리의 기반을 만들고, 그 안에서 활용 가능한 소재를 선별합니다. 이 과정은 마치 문화재 복원가처럼 섬세하고도 시간 소모가 큰 작업입니다.

 

둘째, 공간 기획이 있습니다. 유휴공간이나 폐건물, 사용되지 않는 공공자산 등을 활용해 새로운 기능을 부여합니다. 예를 들어 폐교를 리모델링해 게스트하우스, 카페, 공방, 지역 전시관 등으로 재구성하거나, 오래된 주택을 소규모 창업 공간으로 바꾸는 일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셋째, 콘텐츠 제작과 브랜딩입니다. 영상, 사진, 글, 일러스트 등 다양한 형태로 지역의 매력을 시각화하고, 이를 웹사이트,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플랫폼을 통해 외부에 전달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지역 유튜버’, ‘로컬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로컬 콘텐츠 디렉터들도 많아졌습니다.

 

넷째, 지역 주민과의 관계 형성도 중요한 과업입니다. 이 직업은 외부인으로서 마을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지 주민들과의 신뢰를 형성하고, 함께 프로젝트를 운영할 수 있는 관계성 구축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형태로 마을과 파트너십을 맺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처럼 로컬 콘텐츠 디렉터는 기획자, 디자이너, 사회운동가, 중개인, 브랜드 전략가의 역할을 모두 혼합한 복합적인 직업입니다.

 

왜 이 직업이 주목받는가: 새로운 시대의 생존형 직업


지방 소멸, 인구 감소, 도시 집중화라는 문제 속에서 지역 재생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부가 주도하던 이 작업에 이제는 민간이, 특히 청년들이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 변화입니다.

로컬 콘텐츠 디렉터는 이러한 사회 흐름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대안으로 등장했습니다.


이 직업은 '지방 살리기'라는 무거운 과제를 젊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관광이 아닌, 살고 싶은 공간으로의 전환, 소비가 아닌, 공감과 체류 중심의 콘텐츠를 만들어냅니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콘텐츠 제작과 홍보는 기술적 장벽이 낮아졌고, SNS를 통한 확산도 가능해졌습니다. 때문에 자본 없이도 아이디어와 기획력만 있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진입 문턱 낮은 고창의 직업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 직업은 단기성과가 아닌 장기적 관계성을 중심으로 하며, ‘직업의 지속 가능성’과 ‘삶의 의미’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는 청년들에게는 매력적인 미래 직업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지자체도 이 직업에 대한 필요를 인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일부 지역에서 '로컬 크리에이터 육성사업', '마을 브랜딩 지원사업' 등의 공모를 통해 관련 직무를 제도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로컬 콘텐츠 디렉터’는 단순한 마을 홍보대행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마을의 과거를 기록하고, 현재를 기획하며, 미래의 생존을 위해 일하는 지역 재생 전문가이자 콘텐츠 설계자입니다.

한 마을의 이야기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 이야기에 감동하는 외부 사람들과 연결시키는 역할.
이것은 결코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역과 사람, 삶을 다시 연결하는 일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도시 청년들이 로컬로 향하고, 더 많은 지역이 콘텐츠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이들, 로컬 콘텐츠 디렉터라는 이름의 조용한 직업인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