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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지만 통계나 제도권에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 ‘그림자 직업군’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들은 법적 고용관계가 불분명하거나, 소득이 신고되지 않아 정부의 공식 통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이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 경제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숨은 노동력입니다.
‘그림자’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처럼 이들의 노동은 드러나지 않고, 사회적 안전망에서도 소외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이며,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며, 왜 중요한 존재로 주목받아야 할까요?
오늘 이 글에서는 비가시화된 직업군의 실체를 들여다보겠습니다.
공식 노동시장에 기록되지 않는 일: 그림자 직업군이란?
‘그림자 직업군’은 흔히 비공식 경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법적인 고용계약 없이 일하거나, 사업자등록 없이 활동하는 경우, 또는 소득이 신고되지 않아 통계청, 고용노동부, 국민연금 등 어떤 국가 시스템에도 기록되지 않는 직업 형태를 통칭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이들이 해당됩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개인 홍보물 부착을 도맡는 무등록 배포원
행사장 뒷정리나 셋업 작업을 반복 수행하는 일용직 다크콜러
SNS DM을 통해 의뢰받고 무계좌 거래로 로고 디자인을 제작하는 프리랜서
웹소설 플랫폼에서 ‘서브 필명’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유령 대필자
가족 명의로 음식 배달 장사를 하지만 배달앱에도 사업자등록도 없는 자영업자
이들의 공통점은 실제 수입 활동을 하지만, 제도와 통계에서는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림자 직업군은 단순히 통계를 벗어난다는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보호 체계에서도 멀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일을 하면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이중의 취약성이 존재합니다.
왜 이들은 통계 밖으로 밀려나는가?
그림자 직업군의 존재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 때문만은 아닙니다.
구조적으로 고용 안전망이 느슨한 산업, 사업자 등록이 사실상 불가능한 형태의 일, 기술 변화로 생긴 불안정한 플랫폼 노동, 제도 미비 등이 주요 원인입니다.
첫째, 초단기·초비정규 형태의 고용이 늘어나면서 하루 단위, 심지어 몇 시간 단위로 일하는 형태가 보편화되었습니다. 이 경우 고용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많으며, 신고 자체가 어렵습니다.
둘째,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거래가 확산되면서 개인 간의 사적 거래(P2P)가 늘어났고, 이에 따라 세금 신고나 노동계약이 빠지는 사례가 증가했습니다. 특히 SNS DM, 메신저, 오픈채팅 등에서의 비공식 의뢰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셋째, 자신의 신분, 처지 때문에 드러나기 꺼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령자, 경력단절자, 체류 비자 문제로 인해 공식 경제활동 등록이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 등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림자 직업군으로 흘러들기도 합니다.
넷째, ‘사업화가 어려운 노동’도 존재합니다. 감정노동, 케어노동, 손기술 기반 작업 중 일부는 시장성이 있으면서도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기엔 구조상 모호한 영역입니다. 예: 관상 봐주는 노점 철학가, 손재주로 마을 잔치에 호출되는 시골 수선공 등
이처럼 그림자 직업군은 시장의 변화와 정책의 공백 사이에서 존재는 하지만 제도적으로 포착되지 않는 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림자 직업이 시사하는 것: 제도 밖 생존과 그 안의 가치
비록 제도와 통계 밖에 존재하지만, 그림자 직업군은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작은 일들이지만 도시와 농촌의 생활 기반을 유지시키고, 플랫폼 시대의 문화 생산을 뒷받침하며, 일부는 전통적인 직업의 공백을 메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방의 농촌 지역에서는 마을 행사, 제사, 이장 업무 등 비공식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고령 그림자 노동자들이 지역 공동체를 유지시킵니다.
또한 젊은 세대 중에는 개인 콘텐츠 제작, 무등록 재능거래, 가내 수공업 등으로 일정 수입을 유지하며 ‘통계상 백수’ 상태를 자처하는 이들도 존재합니다.
이런 현상은 ‘일의 정의’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과거에는 정식 직장이 있어야 직업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자기 노동을 사회적 연결망 없이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생존 전략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그림자 직업군은 점차 제도권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 프리랜서 마켓 활성화 → 세무 신고 가능해짐
지역형 일자리 모델 → 비공식 노동의 제도화
플랫폼 노동자 보호법 등 사회적 논의 → ‘노동’의 정의 확대 중
그림자 직업은 ‘불안정하다’는 인식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생계형 직업 방식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을 관찰하고 제도적으로 포용해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그림자 직업군은 단순히 드러나지 않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시스템과 통계 너머에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만들어내고, 기존 직업의 경계를 허물며, 생존과 자율성 사이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동시대의 노동자들입니다.
기록되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은 지금 시대가 어떤 방식으로 ‘일’을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민감한 징후이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직업 세계는 제도권 밖의 노동을 어떻게 인정하고 품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림자 직업군에 대한 탐구는 바로 그 질문에 다가가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